* 2차 세계대전 발발 배경
    - 1939년 9월 1일,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했고, 이틀 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전쟁을 선포

* 독일은 프랑스를 향해 전면전을 시작, 영국의 전쟁전략은 불과 4주만에 붕괴. 6월 3일이 되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영국의 소규모 지상군은 대부분 됭게르크를 통해 프랑스에서 철수

* 프랑스의 몰락이 노르망디 전투의 기원

*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미국과 영국에 전쟁을 선포. 12월 12일 아돌프 히틀러는 미국에 선전포고. 이것은 역사상 가장 큰 실수 중에 하나

* 기본적인 작전 단위인 사단은 1~2만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어떤 병과에서든 전장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가장 최소의 전술 단위였다.

* 1944년 봄, 독일 육군은 314개 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중 기갑사단이 47개였고, 66개 사단은 다른 동맹국이 제공한 병력이었다. 이들 중 215개 사단은 동부전선에, 36개 사단은 발칸반도에, 27개 사단은 스칸디나비아에, 그리고 25개 사단은 이탈리아에 배치되었으며, 8개 사단은 다른 전선으로 이동 중이어서 예비부대는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 아이젠하원는 '오버로드 작전',,, 즉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1944년 6월에 하기로 결정했다.

* 1944년 6월부터 8월 31일까지 연합군 공군은 노르망디에서 지상군 지원에 총 48만 317소티의 출격을 감행했다. 그 중 거의 절반은 영국 2전술공군과 미국9공군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두 공군은 하루 평균 3,000소티의 출격을 기록했다.

* 노르망디 상륙작전 D-Day : 1944년 6월 6일

* 디데이에 바다와 공중을 통해 노르망디를 밟은 15만 6,000명의 병력 중에서 사상자가 약 1만 명정도 발생했는데 이것은 거대한 공세작전치고는 피해가 상당히 적은 편에 속했다.

* 6월 30일이 되자,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은 병력이 약 87만명 5,000명, 차량이 약 15만대, 보급품이 약 57만톤으로 불어났다. 영국2군은 3개 기갑사단과 10개 보병사단, 1개 공정사단을 상륙시켰고, 미 1군은 2개 기갑사단과 9개 보병사단, 2개 공정사단을 확보했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3만 7,034명의 사상자를 냈고, 영군은 2만 4,69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 7월 20일, 독일군 장교들은 히틀러의 전략에 불만의 표시로, 히틀러 본부에 폭탄을 터뜨려 그를 암살하고 연합군과 평화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롬멜만이 자살을 권고 받았다.

전쟁사는 다양한 전투기록과 전력에 대한 분석을 기록하기에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를 잊고서는 현재와 미래를 대비할 수 없기에 반드시 교훈을 기억하고 현재에 가장 올바른 판단과 결심을 해야한다.

과거에 비해 현대의 군사력은 인구 대비 매우 적다. 우리나라가 세계 6번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된 전력에 1/2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과거에 비해 전투경험이 없기에 전투지속력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군대는 전투를 준비해야 하고, 유사시 국가를 지켜내야 한다. 강한 전투력 유지를 위한 훈련과 전력확충 및 유지가 중요하다.

현재의 내 위치, 역할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비록 나의 역할이 미미할 수는 있지만,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지휘관으로서 임무를 완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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